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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합居合 : 일어나지 않을 일을 준비한다는 것

“사무라이는 항상 칼을 갈아서 칼집 안에 넣어둔다. 뽑지 않는다. 뽑지 않는다는 것에 사무라이의 가치가 있다.”“侍は刀を常に磨いてさやの中におさめておく。抜かない。抜かないところに侍の価値がある。”- 최영의大山倍達 거합, 혹은 발도술拔刀術은 일본이라는 특수한 토양에서 발달한 무술의 한 형식이다. 칼집에 넣어 둔 칼을 번개같이 뽑아 상대를 제압하는 모습은 만화, 영화, 게임 등 미디어를 통해 재생산되며 하나의 문화적 아이콘이 되었다. 거합이 매력적인 것은 그것이 검劍이라는 무기가 가진 고유한 특징, 그리고 평시에 존재한 무사집단이라는 모순적 역사를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타 무기와 다른 검의 특징은 무엇일까? 그것은 칼집에 들어가 있다는 사실이다. 물론 창이든 도끼든 철퇴든 운송하는 주머니나 도구는 있었을 것..

백성이 원하는 권력

(2022.05.11 아카이브)“맹자는 양혜왕에게 ‘이익을 위한 정치가 아니라 인의의 정치를 베풀라’라고 말했다. 그렇게 하면 이 세상 최대의 권력을 손에 넣을 수 있다는 것이다. (...) 누구라도 육체적 생명을 보전해 줄 권력에 통치당하기를 바란다. 그리하여 그 권력은 비대해지고 강대해진다. 그것은 백성이 바라는 권력이므로, 그 권력에서 도망쳐나가기는 매우 어렵다.”- 오구라 기조, (2013)

리뷰 2026.05.24

주술을 깬 불교, 주술에 사로잡히다

(2021.05.11 아카이브) 불교에 정통하신 페친들이 여럿 계셔서 잘못된 이해이거나 뻔한 소리일까봐 염려되긴 하는데 여하튼.몇 번인가 썼지만 이야기를 통해 프레임을 짜는 것이 주술magic이다. 즉 주술呪術이란 주술主述이며 따라서 말로써 만들어진 것spellcraft이다. 왜냐하면 이야기에는 반드시 관점과 행위의 주체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언어 자체, 나아가 인간의 사고방식 자체에 내재한 것이며 결국 이야기가 산출하는 결과물은 이야기의 주인공-“나”라는 감각이다.여기서 “나”라는 것은 무슨 자유로운 근대적 개인(그런 것이 이름 말고 현상으로 존재한 적 있는지는 둘째치고)이 아니라 예를 들어 일요일에 교회 안가면 지옥에 떨어진다든지, 대학가면 여자친구 생긴다든지 하는 온갖 주술의 프레임들이 얼기..

생각 2026.05.24

에드워드 호퍼 : 수직은 수평을 이길 수 없다

(2023.05.13 아카이브) 원래 미술은 전혀 알못이고 에드워드 호퍼도 하나 알고 간 전시였다.가장 인상깊었던 건 와 이었는데 인상깊었던 이유가 같았다. 둘 다 실물로 봤을 때 배경인 숲의 귀기가 심상치 않았기 때문이다.도시의 공허와 고독이라고 말하지만 그것은 결국 대비의 문제다. 사람은 왜 허무해지나? 더 커다란 것, 더 영원한 것이 있기 때문이다.마천루가 솟아오르던 시대였음에도 호퍼 선생은 수직이 아니라 수평에 매료되었다. 교량, 철도, 강가, 차창 밖으로 지나가는 풍경, 늘어지는 그림자. 수직이 잠시 승리한 것 같아도 수평에는 저항할 수 없다. 선 것은 언젠가 누울 것이고 죽음은 삶보다 영원하기 때문이다. 한편 해가 뜨고 지는 지평선은 궁극의 수평이고 선생 필생의 테마였던 빛과 어둠의 스위치이..

리뷰 2026.05.24

마지막으로 남은 사랑의 형태

(2024.01.02 아카이브) 인파로 붐비는 퇴근길, 경의중앙선에서 6호선으로 갈아타는 디지털미디어시티역 2-4플랫폼에서.어느 웹소설 남자 주인공으로 보이는 등신대 패널을 힘겹게 끌어안고 열차를 타는 젊은 여성을 보았다. 미묘하게 찌그러지고 접착제 흔적이 남은 뒷판이 필시 파장한 행사에서 염치불구 양해를 구하고 받아온 것이겠거니. 일견 평범해 보이지만 미묘하게 오버센스인 복장도 그녀가 현실보다는 픽션 속에서 살 수 있는 사람-일코에 노력해온 동인녀라는 사실을 일층 드러냈다. 내 앞에 선 아저씨는 눈치도 없이 검은 창에 비친 거대한 등신대 윤곽에 화들짝 놀라 획 뒤를 돌아보았고 그녀는 고개를 숙였다. 다만 오고 가는 사람들 사이에 패널이 구겨질까 하는 걱정만은 아니었을 것이다.만원 전철 가운데 남친 대신..

생각 2026.05.24

한국인 최후의 전장

(2023. 05. 24 아카이브) 나 어릴때와 가장 차이를 느끼는 부분인데 예전 한국 사회에서는 세속적 성취와 덕성 사이에는 반비례 관계가 있다는 세계관 비슷한 것이 있었다. 예를 들면 가난하면 진실하다, 못생기면 착하다라는 식의 정신승리를 통해서 누구나 긍정적 자아정체감 형성이 가능한 어떤 미묘한 사회적 균형이 있었다는 말이다.이를테면 스파이더맨과 배트맨을 비교할 때 부자인 것이 배트맨의 어떤 ✌진정성✌에 페널티가 되는 그런..배트맨이 아무리 불행한 척 하고 사서 고생해봐야 무슨 인생의 진짜 고통을 알겠냐? 하는 관점이다. 반면 요즘엔 부와 아름다움 자체가 일말의 반대급부 없이 전긍정받으면서 덕성까지 집어삼켰는데 그러고보면 최근 여자찐따 남자찐따들이 유독 성적인 문란함에 발작하는것도 이해가 간다. ..

생각 2026.05.24

<사이버펑크 엣지러너: 숭고를 향한 충동>

(2024.06.04 아카이브)뒤늦게 봤다.데이빗이 2살만 더 많았어도 성립하지 않았을 이야기. 소년의 희생 원망(願望)은 사실 충동이고, 오히려 그렇기에 숭고하다. 어머니의 희생이 사실 새끼를 동반한 포유류 암컷의 신경증이듯이, 숭고함이란 결국 어떤 생물학적인 극단성을 보고 느끼는 같은 종으로서의 전율일 것이다.사실 생에의 의지가 개체를 초월할 때가 있어야만 존재할 수 있는 것이 사회요 공동체가 아닌가? 소년의 충동 없이 군대가 존재할 수 있을까? 어머니의 집착 없이 가족이 존재할 수 있을까? 그러나 그 초월이 이타심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반대로 자신의 생존조차 등한시할만큼 극단적인 이기심이기에 여전히 그것은 의지이다.데이빗은 스스로 원하는 모든 것을 이루었으며 그에 대한 일말의 감정적 책임조차 지지..

리뷰 2026.05.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