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린 나이트> 봤다. 이게 성의가 있는건지 없는건지 알 수 없는 작품인데... 거의 충실하게 가웨인과 녹색 기사 전설을 그대로 따라가면서 조셉 캠벨 식 상징으로 말 그대로 도배를 해 놨다. 일상, 소명의 거부, 동굴 깊은 곳으로의 진입, 여신과의 만남, 유혹자로서의 여성...
다만 당연히 그냥 무슨 비유와 상징 템플릿만 그러모아서 영상미로 공구리친 작품은 아니고, 핵심 테마를 얘기하기 위해서 일부러 고전 서사를 도식적으로 인용했다고 봐야 될 것이다. 이른바 인류 공통의 근본 서사라는 이 이야기 구조의 핵심은 통과의례다. 상징적인 죽음과 부활을 통해 새로운 존재(공동체 구성원으로서의 역할과 위치 획득)로 거듭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 주구장창 암시하는 것은 과연 죽음 이후에 부활이 가능하냐는 불안이다. 즉 성장불가능성에 대한 불길한 예감인데.
아까 도식적인 조셉 캠벨 류 상징들이 과잉된다고 썼지만 그 와중에 남성과 관련된 상징들은 꼼꼼히 제거되어 있다. 일단 현로(賢老)가 없다. 기본적으로 아버지는 부재 상태이며 아서왕은 골골대는 뒷방늙은이고 원탁의 기사들은 애송이 하나가 지들 대신 나선다는데 칼 하나 안 빌려준다. 이 역시 소년이 죽고 기사로 부활한다는 도식에 대한 불신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나마 아버지와 비슷한 역할을 하고 있는 게 녹색 기사인데 이 캐릭터는 사실...음 스포일러니 얘기 안 하겠다.
녹색은 작중 대사에도 드러나는 바 인간이 어쩔 수 없는 자연의 흐름이며 그 “어쩔 수 없다”는 감각의 끝에 자리한 것은 풍화, 부패, 쇠락, 궁극적으로는 결국 죽음이다. 여행을 떠날 때 어머니(이름은 나오지 않지만 모건 르 페이라고 암시된다)는 착용자를 절대적으로 지켜준다는 마법의 녹색 허리띠를 준다. 이건 탯줄이다. 그리고 녹색이라는 점에서 알 수 있듯이 그것은 썩어 문드러진 탯줄이다. 진작 떼어냈어야 마땅한.
어머니는 가웨인을 성장으로 이끌지만 한편으로는 품에 가두려고 하는데 이 모순되는 시도 둘 다 진심이다. 만약 성장하지 않는다면 아들이 썩어 문드러질 때까지 “지켜” 주기로 할 셈이며, 성장이 성공하든 실패하든 권력 승계의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는 권모술수의 안배도 되어 있다. 과연 아서왕 전설 희대의 마녀.
여하간 성장하지 못한 채 “가짜 귀환”을 해 봤자 타락만이 기다릴 뿐이다. 후반의 전개는 이에 대한 묘사. 그렇다고 성장 이후를 상상할 수는 없기 때문에 부활은커녕 죽음 직전에 이야기가 끝나는 것이다. 이런 면에서 의사적인 죽음이든 실제 죽음이든 사실 마찬가지다. 시체가 되든가 시체처럼 살든가.
수천년 이상, 어쩌면 만년 단위로 기능해 온 성장(죽음과 부활) 서사가 붕괴한 폐허에서 이제 뭘 어떡할 건가? 추해지느니 그냥 지금 죽는게 나을 수도 있다는 냉소인데 하물며 배경은 크리스마스, 가장 유명한 “부활”의 주인공이 세상에 왔다는 날이다. 감독이 도식에 대해 투덜대다보니 투덜대는 내용 자체 도식적이 된 느낌이 좀 있는데 이런 면에서 성의가 있는 건지 없는 건지 알 수 없다는 것.
(2021.08.10 아카이브)
'리뷰'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백성이 원하는 권력 (0) | 2026.05.24 |
|---|---|
| 에드워드 호퍼 : 수직은 수평을 이길 수 없다 (0) | 2026.05.24 |
| <사이버펑크 엣지러너: 숭고를 향한 충동> (0) | 2026.05.24 |
|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1968): 먹는 인간, 먹지 않는 AI (0) | 2026.05.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