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기본소득과 <상품 평가자로서의 인간>

mukdawn 2026. 5. 2. 15:42

(2025.06.11 아카이브)

 

0.

人世의 온갖 진상은 당근마켓 공짜나눔판에 가면 볼 수 있다.

 

1.

인터넷에서든 현실에서든 제공되는 모든 서비스가 내게 쾌적했는지 아닌지를, 감정 노동차원에서 상대를 평가할 것을 매일매일 요구받는다. ‘유저화한 우리는 마음만이 아니라 온갖 기분이 상품으로 제공된다는 사실에 이미 익숙하다.”

그 결과 우리는 감정에 대해 이성적이어야 할 언어를 정치에서부터 저널리즘, 문학에 이르기까지 전부 다 파묻어 버렸다. 우리는 우리에게 편안한 감정을 주는 언어만을 정치에, 저널리즘에, 문학에 요구했고 그런 유저의 요구에 그들은 너무나 쉽게 굴복했다.”

그러면서 다시금 묻고 싶은 것은 공감할 수 없는 감정이 불쾌하다는 것의 의미다. 우리는 내면에 자신의 불쾌함을 관찰하는 중립적 제3자를 가지고 있지 못하다. 그러므로 공감할 수 없는 것에 대한 비판조차도 감정의 수준에서 이루어지게 된다. 즉 타인의 감정을 모두가 함께 비웃는 감정의 소비가 한편에서 비대화되고 있다.”

- 오쓰카 에이지, <감정화하는 사회>, 2016

 

2.

"우리는 여자들과 학생들의 시대에 살고 있다. 왜냐하면 그들은 경제적 피보호자임과 동시에, 바로 그것에 의해 인간성의 가장 위험한 것에 직면하는 일에서 면제되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청년의 파괴 충동은 온갖 정치 체제가 정치적으로 이용하려고 시도한 것이었지만, 결국 대의제 민주주의의 정치 형태가 그 청년의 파괴 충동 구제에 실패함과 동시에,(...)

- 미시마 유키오, <자유와 권력의 상황>, 문화방위론1968.

 

3.

기본소득의 문제점은 그것이 인간을 경제적 주체에서 서비스의 평가자로 전환시키기 때문이다. 우리가 경제활동 없이-즉 클라이언트나 상사나 손님을 상대해보지 않고 진정한 의미에서 타협과 논의, 인내, 공존, 공동의 의사결정을 배울 수 있을까? 서비스 평가자에게 쾌는 보존되어야 하고 불쾌는 배제되어야 하는정동 외에는 필요치 않다. 미시마 선생이 논한 인간성의 무제한적인 해방이란 이러한 정동의 폭주를 의미하며 선생은 이것이 언론의 자유(여기서 언론이란 미디어만이 아닌 여론의 발화와 수용 전체를 가리킨다)를 만나면 사회가 붕괴할 수밖에 없다고 보았다. 실로 그러한데 경제적 동기 외에는 나와 다른 의견을 가진 존재와의 대화라는 불쾌를 감당한 유인이 없기 때문이다. 단적으로 말해 시간 빌게이츠 인터넷 게시판 상주인원이 보수적으로 잡아도 인구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게 된다는 것이며 이러한 가운데 극단주의는 게임처럼 번져갈 것이다. 왜냐하면 쾌불쾌의 구분이란 추구할수록 끝없이 예민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경제적 의미 없는 순수한 놀이이기에 더욱더 극단적이 된다.

 

4.

이에 따라 개인은 쾌와 불쾌의 기준을 공유하는 부족단위로 파편화되며 그 사이에서 국가만이 절대적인 주체로 군림하게 되는 것이다. 더구나 그 절대성은 이전과 달리 권위가 아니라 서비스의 형태를 띄고 있기 때문에 저항이나 대결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 극단주의의 부상이라고 해 봐야 절대국가의 품 속에서 그 자식들끼리 벌이는 심심풀이 투닥질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시민)사회의 붕괴와 (절대적)국가의 부상에 대하여 기본소득을 지지하는 리버럴 및 좌파 먹물들은 시민교육을 통해 보완할 수 있다고 목소리를 높일 것이다. 그러나 퍼블릭한 기본 교육이라는 형태를 취하려 하는 한 국가에의 종속에 저항하기는커녕 그것을 가속화할 수밖에 없으며 이것은 박원순-이재명으로 이어지는 국가가 허락한 페미니즘의 귀결을 통해 증명된 바 있다.

 

5.

설령 생존과 무관하게 자아실현을 위한 직업활동을 하는 일군의 계층이 등장하고 그들이 혁신과 부를 이끌지라도 그것은 다수 대중과 유리된 엘리트주의적인 계급으로 실현될 수밖에 없다. 결국 기본소득이 실현된 미래의 풍경은 허허벌판에 절대자로서의 국가와 점점이 흩어진 일군의 서비스 평가자, 그리고 그 사이에서 이따금씩 조리돌림의 목표가 솟아올랐다가 사라지는 공간이 될 것이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이미 2025년 내 조국의 모습은 기본소득 없이도 이러한 공간이 실현된 풍경 아닌가? 그러면 돈이라도 꽁으로 받는게 낫지 않겠나 싶다.

 

(2026.05.02 단평추가)

삼성 이득 사회환수 이슈가 뜨거운데 무슨 경제학의 기초상식부터 파괴하는 망상이라고 하면 속은 시원하겠지만 결국 이건 기본소득으로의 밑밥깔기라고 보는게 맞을 것이다. 거기에 "상식"같은건 의미없고 나는 세계에서 가장 먼저 기본소득이 도입된다면 그것은 한국일것이라 생각한다. 기본소득이라는 타락의 결과물- <서비스 평가자로서의 인간> <국가의 정실이 되기 위한 다툼> <배타적 온라인 부족주의>가 이미 가장 극적으로 실현된 공간이 이 땅이기 때문이다. 이재명은 사람이라기보다는 하나의 Idea이며 시대의 총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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