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고류검술/무술잡상

거합居合 : 일어나지 않을 일을 준비한다는 것

mukdawn 2026. 5. 24. 12:08

“사무라이는 항상 칼을 갈아서 칼집 안에 넣어둔다. 뽑지 않는다. 뽑지 않는다는 것에 사무라이의 가치가 있다.”

“侍は刀を常に磨いてさやの中におさめておく。抜かない。抜かないところに侍の価値がある。”

- 최영의大山倍達

 
거합, 혹은 발도술拔刀術은 일본이라는 특수한 토양에서 발달한 무술의 한 형식이다. 칼집에 넣어 둔 칼을 번개같이 뽑아 상대를 제압하는 모습은 만화, 영화, 게임 등 미디어를 통해 재생산되며 하나의 문화적 아이콘이 되었다. 거합이 매력적인 것은 그것이 검劍이라는 무기가 가진 고유한 특징, 그리고 평시에 존재한 무사집단이라는 모순적 역사를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타 무기와 다른 검의 특징은 무엇일까? 그것은 칼집에 들어가 있다는 사실이다. 물론 창이든 도끼든 철퇴든 운송하는 주머니나 도구는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칼집”이 여러 언어들에서 하나의 명백한 단어로 구분되고 있다는 것은 “평시의 휴대성”이 검의 큰 특징이라는 점을 보여준다. 즉 전쟁의 도구로서만이 아니라 예장禮裝, 혹은 호신용품의 성격이 있다는 것이다.
 
칼을 넣고 있으면 평시이다. 그러나 칼을 뽑는 순간 상황은 전시로 바뀐다. 이 “전환능력”이 검이 가진 정체성의 고유한 부분이다. 그리고 평시에서 전시로의 전환이란 결국 칼을 든 자의 인지, 그리고 결단에 다름 아니다.
 
거합의 시조는 16세기의 인물인 하야시자키 진스케(林崎甚助, 1542~?)로 실제 그 발상은 전국시대 말엽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러나 나는 거합이 진정한 의미에서 꽃을 피우게 된 것은 에도시대에 들어서라고 본다. 그것은 에도시대 사무라이 계급의 특수성에서 기인한다.
 
본래 전시의 무사계급은 평시로 접어들면 귀족으로 전환된다. 그러나 일본의 역사 속에서는 전례 없는 평화시기의 도래 가운데에서도 사무라이가 여전히 무사로서의 정체성을 형식상으로나마 유지할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천황과 그 휘하의 조정, 즉 공가公家의 존재 때문이다. 이 정체성의 유지에 동원된 것이 바로 무술과 할복-즉 “굳이” 평시에 적용한 전시의 군법이었다.
 
이 때 칼은 실용보다 정체성의 표현이 된다. 즉 무사라서 칼을 차는 것이 아니라 칼을 차고 있기에 무사인 것이다. 실제 거합에서 칼을 뽑고 베는 만큼 중시하는 것이 칼의 운반, 취급, 착용에 대한 작법이다. 즉 거합의 본의는 *항상* 칼을 차야 하는 자로서 능히 배우고 익혀야 하는 몸가짐과 마음가짐에 대한 것이다.
 
이를테면 거합이 흔히 가정하고 있는 환경은 도시의 골목이나 실내이다. 그런데 에도 성내에서 칼을 뽑으면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할복해야 한다. 즉 뽑는 순간 상대는 나든 무조건 죽은 목숨이라는 것이다. 그런데도 거합에서는 칼을 뽑는다. 이 때 주로 상정하는 것은 이미 칼을 뽑은 상대를 내가 칼을 뽑으며 제압하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내가 *나중에* 칼을 뽑았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것이다. 즉 살아남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나의 (계급적, 직업적) 정당성을 입증하는 것이 목적이다.
 
“뽑으면 죽는다. 하지만 뽑아야 할 상황이 왔을 때는 망설임없이 뽑는다” 이것은 무슨 엑조틱한 죽음 숭배가 아니라 봉건제 하에서 무사 계급으로서 수행해야 하는 보편적인 역할론이다. 이러한 계급윤리를 교육시키는 것으로서 평시의 무사는 정체성을 유지한다. 단순한 미학의 문제가 아니다. 예를 들어 데이브 그로스먼의 <전투의 심리학On Combat>(2008)에서는 “오늘 하루 중 내가 총을 뽑을 수도 있다”라는 마인드셋을 아침에 한번 되새기냐 마느냐가 경찰관과 군인의 생존 여부에 큰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을 밝히고 있다.
 
나는 19세기 조선과 중국이 실패한 근대화에 일본은 성공한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지배층의 특성에 있다고 본다. 설령 수백년간 칼을 뽑지 않았을지라도, 상황이 닥쳤을 때 칼을 뽑아야 한다는 멘탈리티는 실제 비상사태를 맞이했을 때 그 대응이 다를 수밖에 없다. 해양방위론이나 미토학을 포함한 막부 말기 사무라이들이 가졌던 강박적일만큼의 “위기의식”이 이를 증명한다.
 
“거합은 칼을 뽑는 것(발도)과 넣는 것(납도) 뿐이다." 일본의 검술 선생님께서 내게 해 주신 말씀이다. 나는 검술, 그 중에서도 거합이 현대인들에게 가지는 의미를 생각하게 된다. “오늘 하루 중 내가 총을 뽑을 수도 있다”라고 생각하지 않은 경찰관은 불의의 사태가 터졌을 때 순간 현실 자체를 받아들이지 못하다가 죽는다. 한편 현대인의 실전은 칼부림과 총부림에 있지 않다. 그보다는 내가 대처해야 하는 스트레스와, 결단을 내려야 하는 선택들 사이에 있다. 평시와 전시의 판단, 구별, 그리고 그 안에서의 적절한 결단을 내리는 연습이라는 점이 거합, 즉 “일어나지 않을 상황을 준비하는 기예”가 가진 의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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