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5.13 아카이브)
원래 미술은 전혀 알못이고 에드워드 호퍼도 <밤샘하는 사람들> 하나 알고 간 전시였다.
가장 인상깊었던 건 <오전 7시>와 <황혼의 집>이었는데 인상깊었던 이유가 같았다. 둘 다 실물로 봤을 때 배경인 숲의 귀기가 심상치 않았기 때문이다.
도시의 공허와 고독이라고 말하지만 그것은 결국 대비의 문제다. 사람은 왜 허무해지나? 더 커다란 것, 더 영원한 것이 있기 때문이다.
마천루가 솟아오르던 시대였음에도 호퍼 선생은 수직이 아니라 수평에 매료되었다. 교량, 철도, 강가, 차창 밖으로 지나가는 풍경, 늘어지는 그림자. 수직이 잠시 승리한 것 같아도 수평에는 저항할 수 없다. 선 것은 언젠가 누울 것이고 죽음은 삶보다 영원하기 때문이다. 한편 해가 뜨고 지는 지평선은 궁극의 수평이고 선생 필생의 테마였던 빛과 어둠의 스위치이기도 하다.
계단 위에서 아래를 보는 구도, 창문 밖에서 창문 안을 바라보는 구도, 창문 안에서 창문 밖을 바라보는 구도, 그리고 관객석에서 공연을 바라보는 구도가 반복되는데 결국 선생이 보기에 이 모든 연극의 주인공은 (서 있는)배우가 아니라 (누워 있는)무대이다.
사람보다 건물이, 건물보다 도시가, 도시보다 강과 숲이 더 길고 더 커다랗고 더 영원하다. 그리고 각각의 레이어 사이마다 대비를 보여주는 것은 매일같이 켜지고 꺼지는 조명, 즉 빛과 어둠이다. 허무의 레이어는 겹겹이 쳐져 있고 도시와 대비되는 자연이라고 해서 딱히 그 허무함에서 자유롭지 않다. 오히려 인간도 도시도 결국 자연이기 때문에 허무하다고 해야 맞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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