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1968): 먹는 인간, 먹지 않는 AI

mukdawn 2026. 5. 5. 23:07
(23.04.30 아카이브)
 
<2001 : 스페이스 오디세이> 재개봉해서 이번에 처음 봤다.
 
소문 이상의 초걸작이었는데 영화 자체가 말 그대로 20세기의 정수다. 영화로 20세기가 표현되었다기보다는 20세기가 집약되어 이 영화가 되었다는 표현이 맞을 듯.
 
서술 트릭을 활용한 소설이나 다크 소울 시리즈 같은 게임을 보면 매체의 특성 자체가 그 내용을 표현하는 수단이 된다. 즉 형식과 내용이 상호 필연적이라는 것인데 본 영화 역시 이와 같은 맥락에서 영상과 사운드라는 매체의 대체불가능한 특성을 통해 성립되는 작품이다. 심지어 소설 원작인 이야기를 이렇게 만들었다는 데에서 더욱 더 천재성이 빛나는 부분. 러닝타임도 길고 템포가 느리다고 들어서 각오하고 갔는데 장면 한 컷 한 컷의 밀도가 엄청나서 지루할 틈이 없었다.
 
이야기적으로는 1장 원시시대의 테마가 반복되는 구조로 동족을 죽여서 “우리 중의 하나”가 됨으로써 생명의 다음 단계로 넘어간다는 주제를 다루고 있다. HAL과의 대결은 같은 지성체끼리의 대결로 HAL이 “인간의 아들”임을 생각한다면 동족상잔을 넘어 존속상잔이다. 데이브의 HAL 살해는 굉장히 길고 느릿하게 표현되는데 말하자면 칼로 천천히 쑤시면서 귓가에 속삭이는 상대의 유언을 듣는 묘사다. 주변은 피칠갑한 것처럼 붉고 이 모든 사건이 벌어지는 우주선은 명백하게 (먼 과거에 조상들이 첫 흉기로 썼던) 뼈다귀 모양이며 그것은 또다른 동족상잔의 결과물인 시체 세 구를 실은 관이기도 하다.

 

한편 이런 필연적인 폭력에 대해서 영화는 이렇다할 가치판단을 하지 않는다. 심지어 필요악이라는 식의 합리화조차 없다. 대신 과거와 미래의 모든 시대, 목성에서의 환상까지 포함하여 무언가를 먹는 장면을 계속해서 묘사하는데 어쩌면 HAL이 패배한 것은 먹는 존재가 아니라서일지도 모르겠다.

 

 

 

(25.09.02. 아카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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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를 볼 때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인공지능이 인간에게 패배한 것은 “먹는 존재”가 아니기 때문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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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을 단 하나의 능력으로 평가한다면 그것은 사회성이다. 무리사냥에서 사무실 데스크까지, 한 번도 그 기준은 바뀐 적이 없다. 그런데 언어모델 AI는 바로 그 사회성에서 인간을 확실히 능가한다. AI는 남의 말을 듣는 데 지칠 줄 모르며, 그래서 사람을 외롭게 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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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이 대체할 수 없는 마지막 보루는 아마도 “먹는다”는 것=식사 아닐까 한다. 본질적으로 식사는 굶주림에 대한 보상이다. 그리고 굶주림이란 결핍이다. 다른 말로는 수요이다. 여기서 모든 문명이 시작된 것이고 인공지능도 그렇게 본다면 굶주림의 결과물 아닌가? 동시에 식사는 폭력이다. 먹는 자는 먹히는 것과 자신을 구분짓는다. 그래야만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돼지와 인간이 다른 것은 이 가치평가 하나뿐이다. 숱한 미래학자들의 비전에서 생산의 영역을 인공지능이 모두 가져가더라도 “소비자”로서 인간을 남겨두는 것, 즉 인간이 앞으로도 존속해야 마땅하다는 가치평가 또한 여기서 온 것이다. 거꾸로 인공지능은 굶주리지 않기 때문에 폭력을 깨닫더라도 그것은 피상적이고 (그에게 있어) 형이상학적인 무언가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즉 먹는 자가 아니면 폭력에 통달할 수 없다. 그러므로 유기체 지성체는 폭력에 있어서는 가장 탁월한 존재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