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편 이런 필연적인 폭력에 대해서 영화는 이렇다할 가치판단을 하지 않는다. 심지어 필요악이라는 식의 합리화조차 없다. 대신 과거와 미래의 모든 시대, 목성에서의 환상까지 포함하여 무언가를 먹는 장면을 계속해서 묘사하는데 어쩌면 HAL이 패배한 것은 먹는 존재가 아니라서일지도 모르겠다.

(25.09.02. 아카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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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를 볼 때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인공지능이 인간에게 패배한 것은 “먹는 존재”가 아니기 때문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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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을 단 하나의 능력으로 평가한다면 그것은 사회성이다. 무리사냥에서 사무실 데스크까지, 한 번도 그 기준은 바뀐 적이 없다. 그런데 언어모델 AI는 바로 그 사회성에서 인간을 확실히 능가한다. AI는 남의 말을 듣는 데 지칠 줄 모르며, 그래서 사람을 외롭게 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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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이 대체할 수 없는 마지막 보루는 아마도 “먹는다”는 것=식사 아닐까 한다. 본질적으로 식사는 굶주림에 대한 보상이다. 그리고 굶주림이란 결핍이다. 다른 말로는 수요이다. 여기서 모든 문명이 시작된 것이고 인공지능도 그렇게 본다면 굶주림의 결과물 아닌가? 동시에 식사는 폭력이다. 먹는 자는 먹히는 것과 자신을 구분짓는다. 그래야만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돼지와 인간이 다른 것은 이 가치평가 하나뿐이다. 숱한 미래학자들의 비전에서 생산의 영역을 인공지능이 모두 가져가더라도 “소비자”로서 인간을 남겨두는 것, 즉 인간이 앞으로도 존속해야 마땅하다는 가치평가 또한 여기서 온 것이다. 거꾸로 인공지능은 굶주리지 않기 때문에 폭력을 깨닫더라도 그것은 피상적이고 (그에게 있어) 형이상학적인 무언가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즉 먹는 자가 아니면 폭력에 통달할 수 없다. 그러므로 유기체 지성체는 폭력에 있어서는 가장 탁월한 존재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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